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 등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발전비용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미국 일부 주와 호주, 독일에서는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비용이 화석연료보다 오히려 저렴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태를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했다고 표현하는데요. 그리드 패리티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리드 패리티란?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는 ‘기준선’이라는 뜻의 그리드(Grid)와 ‘동등함’이라는 뜻인 패리티(Parity)의 합성어로,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를 사용한 화력발전 비용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전기 생산 비용이 같아지는 시점을 말합니다.
이때 이 ‘발전비용’은 곧 균등화발전원가(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LCOE)로 비교할 수 있는데요. 균등화발전원가란 발전설비를 운영하는 기간에 발생한 모든 비용을 수치화한 값입니다. 여기에는 투자비, 연료비, 운영비, 대기 오염 비용, 보험료 등이 포함됩니다. 이 수치를 활용하면 발전원별로 1kWh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드 패리티가 달성된다는 건 결국 신재생에너지의 균등화발전원가가 화석연료의 균등화발전원가보다 낮아진다는 뜻으로, 신재생에너지가 전력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우선 구매하는 등의 지원 제도를 펼치지 않아도, 시장 경쟁 원리에 따라 신재생에너지가 더 효율적으로 보급될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최종 전력 소비자로서는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다른 연료로 생산할 전력과 차별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그리드 패리티, 현황과 미래
선제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섰던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여전히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비용이 높은 수준입니다.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화석연료보다 1.5배가량 많은데요. 에너지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0년 기준 태양광 발전단가는 kWh 136.1원, 풍력은 166.8원으로 90.16원밖에 되지 않는 석탄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전체 전력 생산량의 20%를 돌파했는데요. 이는 10년 전 대비 4배 수준으로 증가한 수치입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중 비중이 가장 높은 태양광은 15%를 넘어섰는데요. 태양광만 놓고 보면 19배가 넘게 증가한 것입니다. 태양광 발전단가는 역시 꾸준히 감소해, 2017년 대비 13%가량이 줄어들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태양광 발전의 경우 그리드 패리티에 근접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한국 태양광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점차 종료하고 경쟁 입찰제를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시장 경제 체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양광만이 아닌 전체 신재생에너지를 놓고 보았을 때, 우리나라가 실제로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하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에너지 조사업체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FF)는 한국이 그리드 패리티를 2027년에 달성하리라 전망하였는데요. 그러나 기관별로 발전단가를 구하는 방법론이 다르다 보니 각계의 의견이 하나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2041년에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데다, 업계에서도 2027년 달성이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리드 패리티 달성하려면? ‘전기 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하려면 2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로는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낮아져야 하고, 둘째로는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에 불리한 자연환경인데다 전기를 원가 이하로 제공하고 있어 석유나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이 비교적 크게 오르지 않다 보니 값싼 화석연료의 비중을 당장 줄이기가 어렵다 보니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하려다 보니 한국전력공사가 발전사로부터 전기요금을 비싸게 구매해 소비자에게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실제로 2022년 상반기 기준 한국전력공사는 전기를 1kWh당 169원에 사서 소비자에게는 110원에 팔았다고 하는데요. 발전원가가 반영되지 않고 전기요금이 낮게 유지되는 만큼,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보니 그리드 패리티의 달성 시기도 그만큼 늦춰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전 세계 에너지 위기가 닥치며 세계 주요국의 전기요금은 1~2년 사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2021년 1월~2022년 6월 전 세계 전기요금 인상률(주택용·산업용 등 종합 평균)은 일본(35.6%), 프랑스(25.6%), 미국(21.5%) 등 두 자릿수에 달했지만, 한국은 4.6%에 그쳤는데요. 에너지 업계 및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미래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친환경 에너지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그리드 패리티의 달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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