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부터 배터리 전기차의 판매 증가세가 주춤하면서 글로벌 전기차 시장 역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하는 ‘캐즘(Chasm)’에 접어든 것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최근에는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펼치며 완전한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세우고 있는 유럽에서도 전기차 전환 목표를 늦추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전기차 전환, 잠정 연기?
유럽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전기차로의 완전한 전환 계획을 연기하는 추세입니다. 볼보자동차는 최근 변화하는 시장에 “실용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2030년부터 전기차만 생산하겠다는 종전 계획을 철수하고, 최대 10% 정도만 하이브리드 차량을 판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다른 해외 자동차 브랜드 역시 유럽에서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는 당초 목표를 연기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이처럼 유럽에서 전기차 시장 확장이 더딘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렴한 전기차 모델을 내놓기 어려운 현실과 충전소 확대가 늦어지고 있는 점, 그리고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부과가 예상되는 등 전기차 사업이 총체적 난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으로는 내연기관 투자를 중단한 자동차 제조업체로 인해 기존 시장에서 전기차의 경쟁력이 축소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면서 전기차 전환이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유럽 각국에서는 전기차 구매를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만큼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올해 신차 판매량의 22%를 전기차와 같은 무공해 차량으로 해야 한다는 의무제를 도입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단계적인 증가를 통해 100%로 비율을 올리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실제 유럽의 내수 시장에서 전기차는 판매 둔화 현상을 겪으며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독일 역시 2030년까지 독일 내 전기자동차를 1,500만 대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최근 들어 전기자동차 판매가 부진하면서 2024년 4월까지 독일에 등록된 전체 전기자동차는 약 150만 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지원금 폐지, 높은 가격, 충전소 부족, 불안정한 기술 등 전기차 판매 급감의 다양한 요인이 여론조사 결과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그동안은 2030년까지 순수전기차 판매량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35%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배터리 시장 역시 연평균 30% 내외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전기차 판매 부진을 겪고 있음에 따라 국내 전기차 시장도 기존 목표를 수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순수 전기차 수요가 기존 시장 전망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이차전지 업체들의 대규모 투자 역시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입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9월 10일 펴낸 ‘전기차·배터리 산업의 주요 이슈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전기차 수요는 환경 규제 및 안전 문제 비용 등으로 기존 전망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따라 배터리 전기차 시장 동향과 새 전망 등을 기반으로 투자 계획, 가동 시기를 조정하고 구체적인 업계 대응이 필요하다는 게 산업연구원의 진단입니다.
특히 최근 국내외에서 전기차 배터리 화재 사고가 잇따르면서 ‘전기차 포비아’ 현상까지 나타나 관련 시장은 더욱 얼어붙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4년 6월까지 전국적으로 전기차 화재 건수는 187건으로, 화재 원인은 외부 충격, 배터리 결함 등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아파트는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입차를 아예 금지하고 있으며, 서울시 또한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으로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충전율 90% 이하 전기차량만 출입을 권고하는 표준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 투자 계획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중국 전기차의 위협에 대처하는 자세
산업연구원은 또한 중국 전기차 해외 시장 확대가 국내 자동차 산업에 위협 요인이 된다고 예측하였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중국 시장을 제외한 다른 세계 시장에서 신규 등록된 전기차의 21%가 중국산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유럽 시장에서도 순수 전기차 가운데 중국산 비중이 올 상반기 18%를 웃도는 등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내 사정도 비슷합니다. 중국산 테슬라가 본격 수입되면서 국내에서도 중국산 전기차 비중이 작년 14%에 이어 올해 33.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시장 경쟁에서 저가 모델인 중국 전기차가 압도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전기차는 중국산 대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방식의 혁신 및 공급망 효율화 등이 필요하고, 중국의 가격 경쟁력 원천 파악을 위한 철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산업연구원은 제언했습니다.
비싼 전기차 가격과 부족한 충전인프라, 경기 침체 등의 요인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보다 실용적인 전기차 시장 대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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