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무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대표되던 국제 무역이 이제는 분절화되고 있다는 평가인데요. 국제 무역 분절화란 무엇이며 그 원인과 전망은 어떤지 알아보았습니다.
국제 무역 분절화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자유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자유무역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무역이란 국가가 관세나 규제 등으로 무역 활동에 간섭하지 않고 국가 간 교류나 물자 이동을 활성화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현대적 의미의 자유무역은 1947년 체결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자유무역에서 기업은 효율적인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각 국가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원재료를 수급해 낮은 가격에 질 높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데요. 동시에 국외 기업과 국내 기업이 함께 경쟁해야 하므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가격은 낮추면서 질은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가 간 자유무역은 상품 가격을 낮추는 데 이바지하며,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입니다.
그러나 최근 세계는 ‘프래그먼테이션(fragmentation; 분절화)’으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과거에는 효율적 분업이 가능한 글로벌 공급망과 자유 무역이 세계를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특정 지역별로 그룹화되어 그 그룹만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자유롭게 무역하는 게 아니라 마치 육지와 단절된 섬처럼 지정학적으로 나뉘어 고립되고 있는 것인데요. 이렇게 마디마디가 끊어지듯이 나뉘었다고 해서 ‘분절화’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이죠.
국제 무역 분절화가 일어난 원인 ① 코로나19 팬데믹
코로나19가 불러일으킨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이용하는 언택트(Untact) 개념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개개인의 일상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는데요. 전 세계의 경제 역시 크게 흔들렸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어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고, 국제 물류 역시 지연되며 큰 혼란이 일었습니다. 그동안 저렴한 가격에 질 높은 상품을 만들 수 있었던 힘의 근간인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재해로 인해 공급망이 무너지자, 재해 발생 시에도 빠르게 공급망을 복구하고 본래대로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복원력(resilience)’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공급망이 현재 어느 정도의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파악하고 재난이나 사고에 대비하여 생산시설을 옮기는 등의 현상이 나타났는데요. 특히 중요한 부품은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국내에서 생산하거나, 위험 발생 가능성이 낮은 지역에서 공급하도록 공급망의 개편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무역은 자연스레 축소되고 분절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국제 무역 분절화가 일어난 원인 ② 미국-중국 갈등
국제 무역 분절화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는데요. 바로 미국과 중국의 첨예한 갈등입니다. 초기에는 단순한 무역 갈등과 관세 전쟁에서 비롯했으나 이제는 패권을 두고 다투는 경쟁이 되었는데요. 미국과 중국 두 국가 간의 갈등에서 나아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각국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관계에 따라 세계 각국이 크게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블록(block) 대결로 발전하며 상호 간에 수출제한이나 통제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역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원인 중 하나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최첨단 반도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반도체 종류를 줄이는 등 수출 통제를 강화했는데요. 중국은 미국이 기술과 무역 문제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그 대응으로 반도체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처를 했습니다.
이렇게 경제 안보를 이유로 미국과 중국이 상대국으로의 수출을 제한하거나, 기존의 생산 시설을 자국 또는 우방국으로 옮기면서 지정학적 공급망을 새롭게 형성하는 중인데요. 이 탓에 국제 무역의 분절화는 더욱 가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에는 영향이 없을까?
한국은행은 글로벌 분절화 흐름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 우리나라 경제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주요 선진국이 자급률을 제고하기 위해 ‘제한적 분절화’를 시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이 3% 내외로, 경제 블록 간의 보호무역만이 아니라 블록 내에서도 각국의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된다면 우리나라의 수출이 최대 10%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수출 시장의 다변화와 공급망 확충이 필수적이며, 동시에 우리 산업 경쟁력 확보에 더욱 주력해야 합니다.
한편 국제 무역 분절화가 우리나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현재 국제 무역 분절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주요 국가는 해외 진출 기업을 국내로 복귀시키거나 우호국 또는 동맹국에 공급망을 구축하는 정책을 시행해 나갈 전망인데요. 특히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교육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중간재 수입의 수요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중간재란 최종 생산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재료 등의 생산재를 뜻합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 중간재 수출 비용이 2022년 기준 74%에 달할 정도로 큰 만큼 우리나라의 수출이 성장할 기회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앞으로 국제 무역 시장의 분절화가 점점 가속될 전망인 만큼 우리나라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텐데요. 급변하는 시장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우리나라 경제가 더욱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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