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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마주하는 푸른 오아시스가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까닭은 그만큼 물이 매우 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데 요즘 ‘식료품 사막’이라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물을 구하기 어려운 사막처럼, 식료품을 구하기 힘든 지역이라는 뜻인데요. 식료품 사막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이고, 왜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요?

식료품 사막이란?

식료품 사막(food desert)은 과일이나 우유, 채소 같은 신선 식품을 살 수 있는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이 주변에 없는 지역을 뜻합니다.

식료품 사막이라는 말은 1990년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빈곤한 공공주택 지역의 주민들이 신선 식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령화 비율이 높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되었는데요. 식료품 사막은 기후 위기나 분쟁, 경제 침체 등으로 식료품이 구하기 어려워진 사례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신선 식품의 공급이 충분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은 신선 식품을 구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점이 바로 식료품 사막의 문제인데요. 즉 인프라 부족으로 신선 식품이 원활한 유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식료품 사막 현상은 특히 유동 인구가 적은 도시 외곽이나 노인 밀집 거주 지역 등 대중교통 환경이 좋지 않고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쉽게 나타납니다.

일부 지역에서 신선 식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건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킵니다. 대표적인 게 거주민들의 건강 문제인데요. 신선 식품 대신 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는 주민들이 많아 비만 등의 성인병에 취약해지고,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건강 이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또, 신선 식품을 사러 자주 외출할 필요가 없다 보니 집에서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고립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식료품 사막은 왜 생기는 걸까?

식료품 사막이 생기는 원인은 결국 수익성 때문입니다. 유통업계가 이들 지역에 진출하지 않는 배경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물건을 판매할 때 큰 이익이 남기 어렵다는 시장 논리가 적용되고 있는데요. 식품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대부분 민간 영역에서 관리되고 있다 보니 경제 논리에 따라 자연스레 공급 공백 지역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미 국토가 넓고 인구 밀도가 낮은 미국이나 고령화로 도서산간지역의 인구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일본은 오래전부터 식료품 사막 문제에 시달려 왔습니다. 미국에서는 식료품 사막 지역의 기준까지 마련했을 정도인데요. 도 기준 1.6km, 시골 기준 16km 내에 마트가 없는 지역을 식료품 사막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에서는 거주지 500m 내에 마트가 없는 노인 등을 ‘장보기 약자’나 ‘쇼핑 난민’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식료품 사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소득 불균형을 개선해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 설령 소득 불균형을 상당 부분 해소한다고 해도 저소득층의 소득이 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식료품 사막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경우 이들 거주민은 건강 문제 등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 계속 놓이게 됩니다.

때문에 식료품 사막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각국 정부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미국 시카고시는 2023년 9월 지방정부 예산으로 마트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시 정부가 직접 소유 및 운영하는 마트를 식료품 사막 지역에 설립해 신선 식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인데요. 한편으로는 그동안 대형 소매업체들이 시카고 내의 식료품 사막 지역에서 철수한 원인이 만성적인 범죄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미국은 기존에도 2011년 건강한 식습관 형성 캠페인을 통해 식품 사막 지역에 1500개의 마트를 만드는 정책을 추진해 여러 유통 업체가 동참한 바 있지만 그 성과가 좋지 않았는데요. 상당수가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폐쇄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소득층의 낮은 소비 여력이나 저임금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 등으로 마트 이용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식료품 사막 생긴다

본래 식료품 사막은 인구가 적고 인프라가 사라진 도시 외곽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는데요.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는 도쿄 중심지에서 식료품 사막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도쿄 중심지가 재개발되면서 동네 슈퍼나 마트가 사라지고, 이에 따라 인근에 식료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없는 지역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쿄도에서는 이런 식료품 사막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층을 위해 ‘식품 트럭’을 운행하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대형마트가 폐점하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 주요 대형마트 3사의 전국 점포 수는 2023년 말 기준 396개로 10년 만에 400개 미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마트가 없는 지역이라고 해도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당일 배송과 같은 편리한 서비스는 이용할 수 없는 데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그마저도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 역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식료품 사막 지역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프라가 부족하고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인구 소멸 위험 지역에서 식료품 사막 현상의 우려가 큰데요. 인구 소멸 위험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일본의 ‘식품 트럭’과 같은 이동식 마트를 운영하는 등 유통 업체들이 사회 공헌의 관점에서 지방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령화와 지방 소멸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의 식료품 사막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인데요.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처럼 식료품 사막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의 협력이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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