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중동 지역에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동의 정세는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요. 전 세계 해상 수송 원유의 20%가 지나며 ‘세계의 무역로’라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유가 상승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란?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인 오펙(OPEC) 중에서 3대 산유국으로 꼽히는 나라입니다. 하루 석유 생산량이 약 300만 배럴로 추정됩니다.
이란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는 대부분 호르무즈(Hormuz) 해협을 통해 운송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동남부와 아라비아반도 동북부 사이에 위치한 좁은 수로로 세계 석유의 6분의 1, 액화천연가스(LNG) 생산량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하루 평균 2,100만 배럴의 석유가 다른 나라로 수출됐으며, 이는 전 세계 석유 소비의 20%를 책임지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게다가 호르무즈 해협이 관문 역할을 하는 페르시아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와 가스가 매장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란의 석유 생산량이 워낙 많고, 이란 영토인 호르무즈 해협이 중동의 주요 원유 수송로이다 보니 전쟁 등으로 갈등 국면에 놓이면 원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된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지금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유입니다.
호르무즈 봉쇄, 그 피해는?
최근 이란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에 맞서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카드를 들고나왔습니다. 그간 서방 등과의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해 왔는데, 이번에도 그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입니다.
주요 매체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실제로 유가와 주식시장, 그리고 금융시장이라는 판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 말합니다. 국제적인 오일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 전문매체 CNBC는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대로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배럴당 250달러 이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습니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생산비용에 반영되어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해지고, 금리 인하에도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현재 국제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물가 안정을 추진하는 추세인데, 유가가 오르면 금리 인하 시점이 장기적으로 미뤄질 수 있습니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인 IMF는 국제유가가 10% 상승하면 전 세계 물가가 0.4%포인트 올라가고 세계 생산량도 0.1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원유를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타격은 매우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석유·가스·석탄 등 에너지 수입 금액이 우리나라 전체 수입의 4분의 1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수출 길도 막힙니다. 우리나라의 대이란, 대이스라엘 수출이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전쟁 확대로 경기가 둔화하면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수출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결코 쉬운 카드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현실화할 수 있을까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은 국제정치적인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카드를 들고나왔지만, 아직 한 번도 실행한 적은 없습니다. 2012년 서방 국가들이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석유 수출을 제한할 때도, 2018년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 제로’ 정책을 추진했을 때도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며 대응했지만, 현실이 된 적은 없습니다. 또, 해양 환경 규제 위반을 이유로 우리나라 상선이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이란군에 의해 나포된 적이 있지만, 유조선 통행을 봉쇄한 적도 없습니다.
사실, 호르무즈를 거쳐 나오는 석유와 가스는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로 가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이나 이스라엘을 압박할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게다가 페르시아만 중부에 위치한 바레인에 미국이 해군 제5함대를 배치하고 있는데,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 봉쇄하면 미국과의 군사적인 충돌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더 큰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이란 역시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석유는 이란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따라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현 시점에 스스로 수출길을 막는 무리수를 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실행된 적은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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